2015년 7월 20일 월요일

[스크랩] 영화평 '인사이드 아웃', 심리학도가 보고 심리학도에게 권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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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아웃', 심리학도가 보고 심리학도에게 권하는 영화
아띠에터 이호양 | ctiger661@munhw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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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7.14 11:5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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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있는 날_문화뉴스, Culture News·文化新聞]

당신이 만약 현재 대학(학사과정)에 재학중인 심리학도이고, 다가오는 가을학기에 다음 과목들을 들을 예정이 있는지 생각해 보자: 정서심리학, 성격심리학, 발달심리학, 인지심리학. (-필자가 다니던 대학에서는 이 중 성격심리학을 제외한 과목들, 혹은 유사한 과목들이 2학기에 전부 개설되었다.-) 만약 예정에 있다면, 반농담, 반진담으로 말하는데 영화 <인사이드 아웃>이 상영관에서 내려지기 전에 봐 두는 쪽이 좋을지도 모른다. 당신의 지도 교수는 높은 확률로 수업 시간에 이 영화를 언급하거나, 운이 나쁠(?) 경우 이 영화의 감상문을 과제로 제출하라고 할지도 모르니까.

<인사이드 아웃>은, 적어도 심리학도가 본다면, 마치 심리학 전공 교재를 쉽게 풀어서 (그리고 감동적으로) 만든 것과 같은 애니메이션 영화이다.

게다가 유수의 심리학자들에게 자문했으니만큼 그 수준은 매우 높고 정교하다. 그런 만큼 이 영화를 통해 몇 가지 심리학 분야에서 다루는 흥미로운 사실들을 짚어보는 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여기서는 정서심리학과 학습심리학의 몇 가지 개념을 설명하려고 한다.



정서심리학: 5가지 기본 정서

기본 정서, 혹은 1차(primary) 정서란 전 인류가 거의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생애 기초 단계에서 나타내는 정서이다. 이는 사회적으로 습득하는 사회적 정서, 혹은 2차 정서와 구별되는 정서이다. 기본 정서의 수는 학자마다 다르게 규정하는데, 영화와 같이 '기쁨', '슬픔', '공포', '혐오', '분노'의 5가지로 규정하는 경우도 있고, 여기에 '당혹감 또는 수치심'을 더하여 6가지로 규정하는 경우도 있다.

이 영화에는 '기쁨'과 '슬픔'이 정서들 중 가장 먼저 나타나는데, 이는 실제로 정서 발달상 상당히 일리 있는 순서이다. '슬픔'에 대해,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불편할 때 울음을 터뜨리며, 또한 다른 아이가 울 때 따라 우는 '공감 울음'과 같은 현상을 나타낸다. '기쁨'에 대해, 아이는 약 3주경부터 웃는 표정을 짓게 되고, 6주에서 8주 사이에는 타인의 미소를 보고 따라하는 '사회적 미소'를 나타낸다(영화와 달리 이런 미소가 너무 늦게 나타나는 것 같지만, 갓 태어난 아이는 시력이 매우 나쁘기 때문에 타인의 미소를 '보고 따라하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기쁨과 슬픔(또는 괴로움)은 생의 극초기에 이미 나타나는 정서라고 할 수 있다.

이어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각 정서들의 유용성 혹은 장단점이다. 모든 정서에는 그 역할이 있으며, 그리고 부작용도 있다. 기쁨은 어떤 일을 하게 하는 원동력을 제공하지만, 한편으로는 지나친 낙관주의는 주어진 정보를 무시하고 자신의 능력을 과신함으로써 성급한 판단을 내리게 할 수 있다. 반면 슬픔은 에너지가 감소되었음을 나타내는 주요 신호이지만, 동시에 잠시 쉬어가며 주어진 정보들을 한차례 더 살피게 한다. <인사이드 아웃>에서도 '기쁨'은 일단 무조건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반면, '슬픔'은 자신이 가진 정보와 주변 정보를 조합하여 더욱 신중한 판단을 내리려고 한다. 1차 정서로서의 슬픔(또는 우울)의 가장 주된 역할은 여기에, 즉 우리에게 브레이크를 걸어주는 데에 있다.
기쁨, 슬픔에 더해, 영화에서와 마찬가지로 공포나 혐오(특히 신체적, 물리적 혐오)는 인간이 위험한 자극을 피하고, 생물학적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알맞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한다. 독버섯의 징그러운 모양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거나, 또는 독버섯을 먹고 죽은 사람을 보고도 그 다음에 겁도 없이 독버섯을 집어든다면 인간은 진작에 멸종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 속 '공포'가 그러했듯이 과도한 공포는 '공포증'이라는 이름으로 심리학의 치료 대상이 된다. 분노는 내가 어떤 것을 원하고, 원치 않는다는 것을 표현하도록 도움을 준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했던 레일리처럼. 단, 레일리와 레일리의 머릿속 세계가 그랬듯, 지나친 분노(또는 공격성) 표현은 자신의 성격 및 인간관계를 영원히 망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이 영화는 말미에서 동물의 기초 정서에 대해서도 짧게나마 언급했다는 것이다.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워보면 알 수 있듯 동물 역시 몇 가지 기초 정서가 있다. 단 영화에서와 달리, 그것이 인간과 같이 5개 내지 6개 범주로 나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굳이 한 가지 흠을 짚고 넘어가자면, 엄밀히 말해 일정 연령 이상인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5개 정서 외에도 수많은 정서가 살고 있어야 한다. 아까 말했듯, 사람에게는 1차 정서 외에 다양한 2차 정서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질투, 부러움, 죄책감, 자랑스러움, 동경, 연애감정, 감사, 안도감 등이 그것이다(-더 알고 싶다면 검색 사이트에서 'mood map'과 같은 키워드를 검색하기를 바란다-). 게다가 영화 말미에 나왔듯이 이들은 한 가지 경험에 대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물론, 그것들을 모두 캐릭터로 구현하려고 했다가는 이 영화는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므로, 현실적인 관점에서 필자는 이 정도로 수준 높게 심리학적 개념들을 묘사한 영화가 무사히 개봉된 것에 감사한다.



학습과 기억, 인지심리학: 기억에 대한 몇 가지 개념들

<인사이드 아웃>에서 주로 등장하고, 여기서 언급하고자 하는 기억 개념들은 다음과 같다. '장기 기억'과 '망각.'

심리학 연구에서는 '단기 기억'과 '장기 기억'이 구분된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실험으로 밝혀 왔다. '단기 기억'은 말 그대로 아주 잠깐 기억했다가 금방 잊히는 기억이며, '장기 기억'은 좀 더 오래 지속되는 기억이다(-컴퓨터로 치면 RAM과 ROM의 차이로 보면 된다-).

단, <인사이드 아웃>에서 본부에 남아 있던 기억들은 아직 '장기 기억 저장소'로 옮겨지지 않았을 뿐 이미 장기 기억에 속한다. 인지적으로 단기 기억은 약 15초에서 30초간 지속되는 매우 짧은 기억으로, 예컨대 치킨집에 전화하려고 인터넷으로 전화번호를 찾아본 뒤 휴대폰에 그것을 입력하기까지 기억하는 그런 정도의 기억이다. 당신이 그 번호를 일부러 계속 외우거나 해서 장기 기억으로 옮기지 않는 한, 치킨집 전화번호는 당신이 통화 버튼을 누르는 순간 잊힐 것이다. <인사이드 아웃>에서처럼 레일리가 깊은 인상을 받고 저장하려고 하는 기억이라면 그것은 이미 장기 기억이라고 봐도 좋다.

'망각'은 이렇게 저장해둔 기억을 더 이상 기억해낼 수 없는 현상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인사이드 아웃>에서 가장 이론과 다른 부분은 바로 '망각된 기억'에 대한 묘사이다.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일각에 따르면 기억은 영화에서 나온 것처럼 완전히 부서지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망각'이란 기억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아직 기억하고 있는 것을 출력할 수 없는 현상이다. 예컨대 당신이 완전히 잊었다고 생각한 노래의 멜로디가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르는 그런 경험들이 그 증거이다. 영화가 '망각'을 제대로 묘사하려고 했다면, 잊혀진 기억들은 망각의 골짜기에 떨어진 후 부서지는 대신 영원히 그곳에 남아 있어야 한다(-그리고 만약 그런 식으로 묘사했다면 이 영화는 훨씬 잔인해졌을 것이다-).

또 한 가지, 장기 기억은 '일화 기억(episodic memory)'과 '의미 기억(semantic memory)'으로 나뉜다. '일화 기억'은 자서전적 기억, 즉 자신이 경험한 인생의 독특한 주요 사건들에 대한 기억이며, '의미 기억'은 제반 지식, 즉 수학 공식이나 어휘와 같이 보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지식에 대한 기억이다. 다시 말해 영화에 나온 레일리의 기억들은 전부 '일화 기억'에 속하는 것들이다. 아마도 기억을 정서와 연관지으려고 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정서와는 그다지 관련이 없는 '의미 기억'들은 묘사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심리학도로서, 몇 가지 허점은 접어두고 보아도 좋을 영화

몇 가지 관련된 개념을 설명하며 허점을 짚기도 했지만, 앞서 설명했듯 이는 심리학자들(-그것도 미국의 심리학자들-)의 자문을 거친 영화다. 즉 그 정도는 굳이 문제 삼지 않아도 좋을 정도로, 영화로서는 심리학적 개념들을 훌륭하게 잘 녹여내며 좋은 연출을 보여주고 있다.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를 첨부한다면, 국내외 영화, 애니메이션, 지면 만화, 소설 등을 통틀어 심리학 분야에 대해서도 수준급의 이해도와 묘사를 보여준 작품이 아닌가 싶다. 물론 그 외에도 자칫 진부할 뻔했던 스토리를 독특하게 녹여낸 점, 감동적인 요소와 귀여운 디자인 등 다양한 장점이 있는 영화다.

그런 의미에서 심리학도라면, 비록 교수님의 말씀이나 과제가 없더라도 한번쯤 흥미를 갖고 관람하러 갈 만한 영화가 아닐까.


[글] 문화뉴스 아띠에터 이호양 ctiger661@munhwanews.com습작가 겸 대중문화소비자이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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